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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5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와 최단거리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

 

버스 안에서 저 문장을 처음 봤을 때 버스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켜졌다. 그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책을 덮고 강을 내다봤다. 대체로 맑지만 구름이 간간히 섞인 하늘처럼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시작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을 소재로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한 건 순전히 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저 문장 때문이다. 구상은 있었지만 계획은 없었다. 이를테면 저 문장은 불을 지른 격이다.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뭐 그냥 문학적 수사 정도로만 여길 수도 있는 이 문장은 수학적으로 참일 수도 있다. 참일 수도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어떤 전제를 깔면 참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이 문장에서 잠시 상상을 해 볼수 있다. 비현실의 현실성에 대해.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작가가 의도했든 안했든. 그래서 나는 혼자 버스 안에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차원이 다르네

 



당신은 선 위를 움직이는 점이다. 수학적으로 길이만 있고 면적이나 부피 개념이 없는 1차원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선 끝에 도달하면 또 다른 선으로 넘어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면적이 존재하는 2차원 속에 살고 있다면 간단히 점프해서 넘어가면 된다. 2차원 안에는 무수히 많은 1차원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2차원은 1차원의 단순합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다. 1차원 세계 속에서는 1차원 밖을 상상할 수 없다. 또 다른 1차원의 존재를 알 수도 없다. 존재를 모르니 당연히 이동할 수 없다. 1차원 세계에 속한 존재에게 선을 벗어난 세계는 모두 인식불가능한 외부다.




2차원과 3차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3차원 안에는 무수히 많은 2차원이 존재한다. 입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면이 존재한다. 2차원 세계 속에서는 2차원 밖을 상상할 수 없다. 2차원 세계에 속한 존재에게 면을 벗어난 세계는 모두 인식불가능한 외부다.

그렇다면 3차원에서 3차원으로 이동하는 일도 가능할까? 지금까지 차원이 상승하는 과정으로부터 실제 우리가 경험한 적은 없지만 4차원 세계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4차원 세계 속에는 무수히 많은 3차원이 존재하고 3차원에서 또 다른 3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높은 차원에 속한 존재는 낮은 차원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SF소설은 “science fiction”의 줄임말로 SF소설이라 하면 과학 지식에 기초해 쓰여진 소설이라는 일차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흔히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해서 그 느낌이 환타지소설이나 무협소설처럼 뭔가 뻥을 친다는 식으로 의미가 격하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각주:1] 과학과 공상의 경계는 늘 모호하지만 그 장르가 갖는 영역의 애매함과 무관하게 SF 장르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만해도 매니아까지는 아니어도 SF영화(소설 말고)를 제법 많이 챙겨보는 편인데 이야기가 그럴 듯하지 않으면 신경이 거슬리는 편이다.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수학/과학적 사실이 적당히 동원되어야 한다. 일단 현실과 다른 몇 가지 전제를 깔아주고(여기부터 시비를 거는 사람은 대체로 SF라는 장르하고 친해질 수 없다.) 그 안에서 내적 논리성에 충실하다면 충분히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생각해보라. 킹스크로스역 93/4 정류장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호그와트에 사는 해리포터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물론 현실에서는 배우의 얼굴이 빠르게 변해 강력한 분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SF소설에 가깝다. 시공간은 미래의 지구,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여기서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할 전제라면 담배로 폭약을 만들어 원하는 부분만 우주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정도일 뿐 차가 고속도로를 200km정도로 질주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 지구와 설정이 아주 많이 다르지도 않다.

하나 더. 여기에서는 사람마다 남은 수명을 시(hour)단위로 표시한 시계를 차고 있고 그 시계에 찍힌 숫자가 사람 이름이 된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사람은 숫자로 호명되며 존재는 정체성을 상실한다. 삶은 언제나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 불과하다. 여기에서는 죽음이 삶을 지배한다.[각주:2]

등장인물은 킬러와 소녀. 킬러 2021394199가 소녀를 처음 만난 순간에 소녀 이름은 100이다.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삶이 1%씩 닳아 없어지는 이 소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반면 소녀와 대비되는 인물인 킬러는 감정을 억누른 채 표정 없이 살아간다. 남아 있는 시간이 다를 뿐 죽는 건 어차피 모두 똑같다고 말한다.

킬러에게 삶은 작업(청부살인)과 또 다른 작업을 잇는 단순한 과정의 반복이다. 순차적으로 놓인 점(살인)을 연결하는 1차원적 삶이다. 요컨대 그의 삶은 선형이다. 그는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내비게이션을 켜서 다음 목표물의 주소를 입력할 뿐이다. 언제나 목표물에 이르는 최단거리만을 고려하므로 주어진 길 밖의 삶을 인식불가능하다. 따라서 그에게 모든 곡선은 직선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니까.

하지만 킬러는 짐짓 쿨한 척하는 것일 뿐이다. 존재의 바닥에서 킬러는 언제나 극단적인 공포와 싸우고 있다. 킬러는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제거해버리는 전략을 취했다. 그에게 삶은 단순한 것이어야했다.

 

죽음의 공포란 무섭죠. 압니다. 저도 그런 공포를 많이 겪었습니다. 우주증후군이라는 건데,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제가 갑자기 저를 빠져나와요.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거죠. 빠져나와서는 지구를 벗어나고 은하계를 벗어나고 또 먼 우주를 벗어나서 어디론가 아주 멀고 크고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집니다. 먼지보다도 작고 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존재가 되는 거죠.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소녀의 삶도 마찬가지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해야만 한다는 공포와 분노는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단순한 경로 외에 무엇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다. 킬러와 소녀. 두 개의 1차원 세계가 만났을 때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은 당장 없다.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야만 서로의 세계가 연결된다. 관계성을 회복해야 삶은 다른 차원으로 비약할 수 있다.


 

직선=최단거리?


직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유클리드 <원론>에 따르면 직선은 점들이 한결같이 고르게 놓인 것이다.’그러나 한결같이 고르다는 말도 애매하긴 매한가지여서 직관적으로는 차라리 직선이란 말이 이해하기 쉽다. 직선이란 단어는 일상적으로 써왔지만 점들이 한결같이 고르게 놓여있다는 서술은 생소하다.

직선이 정의되면 선분은 직선의 부분으로 이해하면 된다. 직관적으로 선분을 이해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라는 개념이다. 너무 쉬운 이야기다.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는 선분(직선의 일부)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가 선분이고 그 연장이 직선이라고.

자 그럼 구면 위에서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는 무엇인가? 쉽게 지구를 떠올려보자. 지구상의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거리는 무엇일까? 선분을 평면에서와 똑같이 이해한다면 선분은 구를 뚫고 지나갈 것이다. 구면 위에서는 최단거리를 이해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곡면(surface)에서는 어떤가?






구를 평면으로 자르면 원이 생긴다. 이 원들 가운데 구의 중심을 지나는 평면으로 자른 원이 가장 큰데 이를 대원이라고 부른다. 이 대원의 일부가 측지선(geodesic)이고 측지선이 구면 위에서 두 점을 잇는 최단거리다. 대원을 따라 걸어라. 그러면 당신은 지면과 수직을 이루며 가장 균형 잡힌 자세로 걷게 될 것이다. 

구면에서는 대원=직선, 측지선=선분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선분 3개로 이루어진 도형이 삼각형이라면 구면 위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도 180도를 넘게 된다. 대전제가 하나 바뀌면 대전제로부터 도출된 사실들이 줄줄이 다 바뀐다.

기존 설명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다. 이전 설명이 평면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잘 들어맞는다. 부분적인 정의로서는 충분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의로서는 부족하다. 수학에서는 이처럼 틀리고 맞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시스템을 전제하느냐에 따라 지식의 구성체계가 바뀐다. 말그대로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현대 수학에서는 영역에 따라 차원(dimension), 공간(space), 그룹(group), 장 또는 체(field) 등 다양한 개념을 사용하여 지식의 층위를 구분한다.


 

다시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다시 킬러에게 모든 곡선은 직선이다. 왜냐하면 킬러는 언제나 최단거리만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목표물과 목표물을 잇는 최단거리. 점과 점이 선으로 연결된 1차원적 선형의 세계. 이 세계를 벗어나는 길은 다른 세계와 접속되는 길 뿐이다. 다른 세계와 만나려면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길, 최단거리를 벗어나야 한다. 킬러와 소녀가 아주 잠시나마 각자에게 주어진 궤적을 벗어났던 순간이 있다.

 

202139419697은 블랙홀 체험관 뒤쪽의 공원으로 갔다. 두 사람 모두 차를 탈 기분이 아니었고, 말을 할 기분도 아니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린 것 같기도 했고, 어디선가 힘을 얻은 것 같기도 했다. 100이 된 것 같기도 했고, 0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공원의 작은 길을 계속 걸었다. 20213941962021394195가 될 때까지, 9796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물론 그 경험은 너무 미비하고 짧았다. 그 둘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기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일탈은 시작되었다. 이제 둘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96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이에게 어떤 선택이 주어질 수 있을까? 소녀는 다음 목표물을 우주로 날려버릴 때 자신도 함께 날려달라고 부탁한다. 삶의 종착점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소녀는 가장 근본적인 일탈을 감행한다.

 

구십육 시간이 남은 걸 아는 사람에게 죽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질문이요.”

어떤 질문?”

어떤 질문이든 상관없어요. 답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필요한 건 질문이에요. 구십육 시간이 저에겐 답이에요. 질문을 알고 싶어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목표물 토드와 함께 소녀를 우주로 날려 보내려던 킬러는 처음으로 격투 중에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자신까지 우주로 발사되는 순간 소설은 끝이 난다. 킬러는 자신이 가게 될 우주를 생각했다. 께 우주로 날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소녀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순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래서인지 이 결말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렇다면 킬러에게는? 킬러는 자신의 룰을 아주 조금 어긴 것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치룬 셈이다. 완전했던 삶은 파괴되었다. 그런데 결말은 역설적으로 라이프컨트롤센터가 정해준 운명을 벗어나는 최초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 우주에서 킬러와 소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결말에서 죽음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상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령 그것이 아주 고독하고 외로운 소멸을 의미할지라도 말이다.

  

각자가 선택한 세계 속에는 고유한 시간과 거리 개념이 존재한다. 다른 세계와 충돌하지 않는 세계는 그 자체로 완고하고 자기완결적이다. 그 바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미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 외부가 형성된다. 외부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자기세계는 방어본능과 소통본능이 동시에 작동한다. 질적으로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는 이에게 외부는 가장 고통스럽지만 매혹적인 장소다. 관계성의 변화는 가장 혹독한 댓가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결론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간절한 이에게 더 많은 길이 열릴 것이다. 


  1. 이와 관련해서는 영화평론으로 유명한 블로거 듀나의 글 “ http://www.djuna.kr/movies/etc_2000_08_25.html” 을 참고. [본문으로]
  2. 메갈로시티의 라이프컨트롤센터가 수명을 결정할 뿐, 구체적인 배경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 설정은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은하철도 999’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부유층이 사는 첨단도시 메갈로폴리스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한 인간들이 거액을 들여 육체를 기계화시킨다. 죽음을 극복한 대신 감정도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킬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칸나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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