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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1 게이머의 양심 - ‘페이퍼스 플리즈’
  2. 2014.09.10 선택과 후회 - ‘브레이드’

영화 <토이즈>를 보면 재밌는 장면이 나온다. 형으로부터 장난감 회사를 물려받은 전직 군 장성 릴랜드는 장난감을 개조해 무기를 만들려는 전쟁광이다. 그는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탱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며 적의 병력은 쏘지 않고 “어딜 가나 끼어드는 빌어먹을 유엔” 트럭들만 골라 파괴한다. 적의 탱크를 쏘면 300점, 헬리콥터를 쏘면 500점을 얻고, 유엔 트럭을 쏘면 벌칙으로 무려 1000점이 감점되는데도 말이다.


이렇듯 플레이어들은 오로지 게임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행위를 결정하는 주체이다. 한편으로 게임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며 플레이‘하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수용되는 상호작용적 매체이다. 같은 게임이라도 사람마다 그것을 다르게 즐기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래에서 소개할 게임은 플레이어의 양심적 선택에 따라 게임에서 얼마나 다른 다양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토이즈


‘페이퍼스 플리즈(Papers, Please)’는 루카스 포프(Lucas Pope)가 1인 개발한 인디게임이다. 도스 시절을 연상시키는 도트 그래픽과 간소한 인터페이스가 특징이다.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아스토츠카라는 동구권풍의 가상의 독재국가다. 플레이어는 국경 검문소의 입국심사원이 되어 입국자들의 서류를 검사하고 입국 허가 또는 거부 여부를 결정한다. “서류를 제출하십시오.”라는 뜻의 게임 제목은 새 입국자가 창구에 도착할 때마다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형식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게임 플레이는 어떻게 보면 다소 따분하다. 책상 앞에 앉아 한 줄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입국서류를 보고 허가/거부 둘 중의 한 도장을 찍으면 된다. 입국 승인 요건은 그때그때 상부에서 하달된다. 처음에는 여권과 입국 허가증, 노동 허가증 정도만 검사하면 되지만, 갈수록 망명 허가증이나 예방접종 인증서 등 서류가 많아진다. 그 밖에 기재된 국적, 성별, 나이, 입국사유, 만료일자 등을 대조하여 위조된 서류가 아닌지도 판정해야 하고, 수상한 사람은 따로 대질심문을 하고 무기나 밀수품은 없는지 엑스레이도 찍어봐야 한다.


페이퍼스 플리즈의 트레일러 - 그래픽과 사운드가 이 작은 게임에 담긴 묵직함을 잘 드러낸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심사한 사람의 수에 따라 성과급제로 임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집의 임대료와 난방비를 내고 식구를 먹여 살릴 식료품도 사야 한다. 추위와 굶주림이 계속되면 가족이 병에 걸리고 죽기까지 한다. 문제는 먹고 살 돈을 버느라 쉴 새 없이 서류를 들여다보기도 바쁜데, 플레이어의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수든 고의든 심사를 잘못하면 처음 몇 번은 경고장을 받지만 그 다음부터는 임금이 삭감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 여성이 자신을 쫓는 포주의 입국을 막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이웃 국가에서 전염병이 창궐해 해당 국가 출신인 사람의 입국은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때로는 반정부 비밀결사 요원들이 찾아와 임무를 맡기기도 하는데, 이런 사건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수십 가지 엔딩이 있다. 비밀결사에 협조했다가 불온단체와 내통한 죄로 사형을 당할 수도 있고, 반대로 협조하지 않았는데 반체제 세력이 집권하면 배신자로 낙인 찍혀 ‘행방불명’될 수도 있다. 엔딩 중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입국자들의 미리 여권을 압수해두어야 한다.


국경에서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도 종종 일어난다.


페이퍼스 플리즈는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상부의 지침만을 충실히 따르는 순응주의자가 될 수도, 반정부 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혁명가가 될 수도, 대의보다는 가족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걱정하는 소시민이 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정답은 없다. 선택에 따른 다양한 결말이 있을 뿐이다. 어떤 플레이어는 한 가지 선택에 만족하여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플레이어는 모든 엔딩을 다 볼 때까지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수많은 멀티 엔딩 게임들 중에서도 플레이어의 양심에 따른 선택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사실 그걸 빼면 이 게임은 시체다. 갈등을 일으키는 결정들이 없다면 단순히 글자 읽기와 마우스 클릭을 반복하는 ‘일’이 뭐가 재밌겠는가? 액션이나 퍼즐, 시뮬레이션 같은 장르를 택하지 않고 사회주의체제 하의 단순노동에 걸맞은 ‘지루한’ 플레이 방식을 채용함으로써 복잡함은 버리고 게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디스토피아 서류 스릴러’라는 부제가 이 게임의 장르적 특이성을 보여준다.


얼마 전에는 ‘나쁜’ 비디오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도덕적으로 만든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게임 안에서 저지르는 행위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낌으로써 도덕적 감수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 물론 이와 상반되는 연구도 많고 앞으로 더 세밀한 탐구가 필요하겠지만, 게임이 플레이어의 폭력성을 증가시킨다는 세간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흥미로운 결과다.


플레이어들은 때로는 게임의 목표를 추구하고, 때로는 <토이즈>의 릴랜드 장군처럼 목표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페이퍼스 플리즈처럼 게임에 단일한 목표가 없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피드백을 받고, 그에 따라 가상 및 현실 세계에서의 행동을 수정하거나 강화한다. 이처럼 게임은 플레이어가 가능한 여러 가지 행동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현실의 비슷한 상황들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들고 나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방향의 영향일지는 게임 개발자와 플레이어 둘 모두에게 달렸다.

  1. Grizzard Matthew, Tamborini Ron, Lewis Robert J., Wang Lu, and Prabhu Sujay.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August 2014, 17(8): 499-504. [본문으로]
Posted by 人鬪

영화 <나비효과>의 주인공 에반은 잘못된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 기억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가 시간여행을 반복할 때마다 미래는 점점 더 큰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나비효과>의 서사구조는 많은 액션/어드벤처 게임의 플레이 모습과 닮았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죽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앞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 다시 게임을 진행한다. 선형적 플롯을 가지지 않는 게임의 경우 앞선 시점으로 돌아가 게임을 플레이하면 <나비효과>에서처럼 뒤의 이야기가 아예 다른 결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고 때로는 후회하면서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적어도 아직까지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곤살로 프라스카는 이러한 세이브-로드 기능이 게임을 ‘진지하게’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각주:1]


우리가 게임에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시시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다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플레이어는 실제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 문제는 ‘진지한’ 문화적 생산품에서는 본질적으로 그러한 일들이 실제 삶에서는 벌어질 수 없다는 데 근거한다는 점이다. 햄릿의 딜레마는 비디오게임에서는 ‘사느냐’와 ‘죽느냐’가 양자 모두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의미해진다.[각주:2]


그와 상반되게 제프리 로프터스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게임의 즐거움이 후회를 최소화하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수단은 ‘대안적 세계’의 생성이며, 대안적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은 플레이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기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실제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와 가상적 공간을 제공한다.[각주:3]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세이브-로드와 리플레이에 의한 반복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고 게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영화 <나비효과>


이와 관련하여 조너선 블로(Jonathan Blow)의 2008년작 ‘브레이드(Braid)’라는 비디오게임을 소개하려고 한다. 브레이드는 언뜻 보기에는 수퍼마리오와 비슷한 인터페이스의 액션/어드벤처 게임 같지만, 고유한 플레이 방식과 독창적인 레벨 디자인으로 평단과 게이머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미술과 음악을 빼고는 개발자가 사실상 한 명뿐인 인디게임이라는 점도 놀랍다.


다른 액션/어드벤처 게임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브레이드에는 어떤 의미에서 ‘목숨’의 개념이 없다. 캐릭터가 불구덩이에 떨어지거나, 몬스터와 부딪히거나, 대포알에 맞는 순간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며 게임의 시간이 멈춘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세이브-로드 기능으로 앞선 시점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하듯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캐릭터가 ‘죽기’ 전 시점으로 돌아간다. 이 되감기 기능은 캐릭터가 죽을 때가 아니라도 게임 중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다.


게임은 6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는데, 각 세계마다 특징적인 이름과 그에 걸맞은 게임 메커니즘이 있다. 예를 들어, 4번 세계인 ‘시간과 공간’에서는 캐릭터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뒤로 흐른다. 스테이지의 진행 순서도 특이한데, 2번 세계부터 6번 세계까지 차례로 마친 뒤에야 비로소 1번 세계가 활성화된다. 줄거리는 남성 캐릭터가 ‘위험에 빠진 처녀’를 구하는 전형적인 서사이지만, 마지막 스테이지인 1번 세계를 깨면 소름끼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브레이드의 트레일러 -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는 동시에 결과를 되돌릴 수 있다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이며, 게임을 구성하는 각 세계에는 ‘용서’, ‘결정’, ‘망설임’ 등의 표제어가 붙어 있다. 제목인 ‘braid(꼬임, 땋음)’도 시간의 꼬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스테이지를 끝내면 나오는 에필로그 중에 “이제 우린 모두 개새끼들이야.(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라는 인용문이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핵무기 실험 직후에 내뱉은 말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의 서사가 모호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에 대한 뒤늦은 후회의 은유로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도시가 불타는 듯한 암울한 메인 화면도 핵전쟁을 연상케 한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프라스카와 로프터스의 관점에서 보면, 브레이드는 단순히 핵개발뿐만 아니라 게임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오늘날의 대중적 게임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프라스카가 지적한 세이브-로드의 반복에 의한 진지함의 훼손을 브레이드는 되감기 기능과 게임 내 텍스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되감기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대안적 세계를 생성함으로써 로프터스가 말한 후회의 최소화와 그에 따른 즐거움 역시 놓치지 않았다.


브레이드는 게임을 단순히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오락 거리가 아닌 하나의 ‘진지한’ 문화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게임처럼 그 내용과 형식이 땋은 머리처럼 미학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게임의 메커니즘과 플레이어의 능동적 수용을 중시하는 ‘루돌로지’와 텍스트로서 게임의 완결된 서사를 중시하는 ‘내러톨로지’라는 두 입장 사이의 논쟁을 다루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1. James Newman, Videogames, 2007. (박근서 등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본문으로]
  2. Gonzalo Frasca, Ephemeral games: Is it barbaric to design videogames after Auschwitz?, 2000. 앞의 책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Geoffrey R. Loftus & Elizabeth L. Loftus, Mind at Play: the Psychology of Video Games, 1983. 앞의 책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Posted by 人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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