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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6 세계평화와 4학년의 업적

게임을 통해 평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하여 한 가지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각주:1]


세계평화게임(World Peace Game)’은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 존 헌터(John Hunter)가 만든 대화형 게임이다. 헌터는 1978년에 이 게임의 원형을 처음 만들었고 지금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게임을 주최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세계평화와 4학년의 업적(World Peace and Other 4th-Grade Achievements)>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헌터는 2012년에 타임지가 선정한 교육운동가 12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평화게임을 하는 존 헌터와 학생들

 

세계평화게임은 가로·세로·높이 4피트 크기의 4층짜리 아크릴 구조에서 진행되며, 각 층은 외우주와 대기, 지표, 해저를 상징한다. 거기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서로 다른 4개 국가의 영토와 영공, ··공군, 인공위성, 잠수함, 해저광산 등이 있다. 40여 명의 학생이 각국의 수상, 국무장관, 국방장관, 재무장관, 감사원장 등을 맡아 내각을 구성하고, 역할 중에는 유엔이나 세계은행, 무기상인도 있다.


게임의 목표는 이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민족 갈등, 화학물질 누출, 핵 확산, 물 분쟁, 분리·독립 운동, 기근, 동물의 멸종, 지구온난화와 같은 위기상황을 함께 해결하고, 각국의 경제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권력과 파괴,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장기적 계획과 전략을 세우는 법을 배운다.


대화형(interactive)’ 게임이기에 엄밀하게 짜이고 문서화된 규칙은 없다.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학생들이며, 교사는 지켜보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촉진하는 역할만 한다. 헌터는 처음 교편을 잡았을 때 교사가 수업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의 집단지성이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인정한다. 헌터는 게임에서 실제로 일어난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 1:


한 학생이 가장 가난한 나라의 국방장관을 맡고 있었다. 그 나라의 이웃에는 돈도 많고 기름도 풍부한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갑자기 수상의 명령도 어기고 인접국의 유전지역을 공격했다. 학생은 그곳을 포위해 총 한 발 쏘지 않고 지역을 확보했다. 인접국은 연료공급이 차단되어 어떠한 군사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화를 냈다.


며칠 뒤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접한 강대국이 전 세계를 점령하기 위해 무력도발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사태의 추이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고, 대규모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소규모 전쟁을 감행하는 냉철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학생들은 게임을 멈추고 그의 판단이 옳았는지 조건에 따라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사례 2:


플라스틱 말로 표시되는 병사들이 전쟁에서 사망하면, 군사령관이 병사들의 가상의 부모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진다. 한 번은 학생의 제안으로 수업을 참관하던 학부모가 직접 편지를 읽게 되었다. 편지의 세 번째 줄을 읽으면서 학부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전투에서 병사를 잃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해도 기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례 3:


방과 후에 틈틈이 7주 동안 진행된 게임에서 세계은행의 재정정책 때문에 한 나라가 시작할 때보다 더 가난해졌다. (게임의 목표는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각국의 경제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게임을 마칠 시간이 1분도 채 안 남았고 교실은 혼란에 빠졌다.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는 학생도 있었고, 서류뭉치를 흔들거나 교실을 뛰어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종을 울리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은행이 모든 자금을 끌어 모아서 모든 나라가 가난해졌습니다. 지금 세계은행에는 6000억 달러가 있습니다. 이 돈을 가난한 나라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만약 그 나라가 이걸 수용하면 국가의 자산가치가 올라가고, 그럼 우리는 게임을 이기게 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간이 3초 정도 남았을 때였다. 모두 그 나라의 수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 게임은 이긴 것으로 끝났다.


교육용 게임은 많다. 재밌는 것이 드물 뿐.


게임은 교과서와 다르다. 게임에서 학습자는 평화란 무엇인가라든지 평화를 어떻게 만드는가와 같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주어진 답을 저축하듯이 암기하지 않는다. 문제를 만드는 것도 그에 대한 답을 구성하는 것도 플레이어 자신과 동료들이다. 이는 게임의 본질이 바로 플레이어의 ‘능동적 참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의 재미라는 요소가 바로 이러한 참여를 유도한다. 여기서 우리는 맨 앞의 질문에 대한 모종의 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헌터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매 게임이 다릅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사회문제가 중요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경제문제가 중요합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전쟁문제가 대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인류의 현실이니까요. 학생들은 무엇이 옳은 길인지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찾아냅니다. 게임을 통해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이 게임을 통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고 세상을 이롭게 할 동력을 얻게 된다면, 우리 모두를 구원할지도 모릅니다. 게임을 통해 배울 수만 있다면 말이죠.


*세계평화게임과 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계평화와 4학년의 업적>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공식 페이지(theworldpeacegame.com)에서 얻을 수 있다.


  1. 이 글은 존 헌터의 TED 강연 영상을 바탕으로 쓰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人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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