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비효과>의 주인공 에반은 잘못된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과거 기억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가 시간여행을 반복할 때마다 미래는 점점 더 큰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나비효과>의 서사구조는 많은 액션/어드벤처 게임의 플레이 모습과 닮았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죽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앞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 다시 게임을 진행한다. 선형적 플롯을 가지지 않는 게임의 경우 앞선 시점으로 돌아가 게임을 플레이하면 <나비효과>에서처럼 뒤의 이야기가 아예 다른 결말로 이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고 때로는 후회하면서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적어도 아직까지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 곤살로 프라스카는 이러한 세이브-로드 기능이 게임을 ‘진지하게’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각주:1]


우리가 게임에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시시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다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플레이어는 실제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 문제는 ‘진지한’ 문화적 생산품에서는 본질적으로 그러한 일들이 실제 삶에서는 벌어질 수 없다는 데 근거한다는 점이다. 햄릿의 딜레마는 비디오게임에서는 ‘사느냐’와 ‘죽느냐’가 양자 모두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의미해진다.[각주:2]


그와 상반되게 제프리 로프터스와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게임의 즐거움이 후회를 최소화하는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수단은 ‘대안적 세계’의 생성이며, 대안적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은 플레이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기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실제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와 가상적 공간을 제공한다.[각주:3]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세이브-로드와 리플레이에 의한 반복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고 게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영화 <나비효과>


이와 관련하여 조너선 블로(Jonathan Blow)의 2008년작 ‘브레이드(Braid)’라는 비디오게임을 소개하려고 한다. 브레이드는 언뜻 보기에는 수퍼마리오와 비슷한 인터페이스의 액션/어드벤처 게임 같지만, 고유한 플레이 방식과 독창적인 레벨 디자인으로 평단과 게이머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미술과 음악을 빼고는 개발자가 사실상 한 명뿐인 인디게임이라는 점도 놀랍다.


다른 액션/어드벤처 게임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브레이드에는 어떤 의미에서 ‘목숨’의 개념이 없다. 캐릭터가 불구덩이에 떨어지거나, 몬스터와 부딪히거나, 대포알에 맞는 순간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며 게임의 시간이 멈춘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세이브-로드 기능으로 앞선 시점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하듯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캐릭터가 ‘죽기’ 전 시점으로 돌아간다. 이 되감기 기능은 캐릭터가 죽을 때가 아니라도 게임 중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다.


게임은 6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는데, 각 세계마다 특징적인 이름과 그에 걸맞은 게임 메커니즘이 있다. 예를 들어, 4번 세계인 ‘시간과 공간’에서는 캐릭터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뒤로 흐른다. 스테이지의 진행 순서도 특이한데, 2번 세계부터 6번 세계까지 차례로 마친 뒤에야 비로소 1번 세계가 활성화된다. 줄거리는 남성 캐릭터가 ‘위험에 빠진 처녀’를 구하는 전형적인 서사이지만, 마지막 스테이지인 1번 세계를 깨면 소름끼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브레이드의 트레일러 -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는 동시에 결과를 되돌릴 수 있다면?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이며, 게임을 구성하는 각 세계에는 ‘용서’, ‘결정’, ‘망설임’ 등의 표제어가 붙어 있다. 제목인 ‘braid(꼬임, 땋음)’도 시간의 꼬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스테이지를 끝내면 나오는 에필로그 중에 “이제 우린 모두 개새끼들이야.(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라는 인용문이 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케네스 베인브리지가 핵무기 실험 직후에 내뱉은 말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의 서사가 모호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에 대한 뒤늦은 후회의 은유로 보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도시가 불타는 듯한 암울한 메인 화면도 핵전쟁을 연상케 한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프라스카와 로프터스의 관점에서 보면, 브레이드는 단순히 핵개발뿐만 아니라 게임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오늘날의 대중적 게임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프라스카가 지적한 세이브-로드의 반복에 의한 진지함의 훼손을 브레이드는 되감기 기능과 게임 내 텍스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되감기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대안적 세계를 생성함으로써 로프터스가 말한 후회의 최소화와 그에 따른 즐거움 역시 놓치지 않았다.


브레이드는 게임을 단순히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오락 거리가 아닌 하나의 ‘진지한’ 문화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게임처럼 그 내용과 형식이 땋은 머리처럼 미학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게임의 메커니즘과 플레이어의 능동적 수용을 중시하는 ‘루돌로지’와 텍스트로서 게임의 완결된 서사를 중시하는 ‘내러톨로지’라는 두 입장 사이의 논쟁을 다루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1. James Newman, Videogames, 2007. (박근서 등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본문으로]
  2. Gonzalo Frasca, Ephemeral games: Is it barbaric to design videogames after Auschwitz?, 2000. 앞의 책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Geoffrey R. Loftus & Elizabeth L. Loftus, Mind at Play: the Psychology of Video Games, 1983. 앞의 책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Posted by 人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