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볼크먼의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각주:1]는 지난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결정적 무기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경쟁과 욕망의 역사였으며 거기서 전쟁과 과학이 어떤 상호관계를 맺었는지를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바로 ‘시드 마이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을 떠올렸다. 이 글에서는 비디오게임 ‘문명’을 통해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한다. 게임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2005년에 나온 ‘문명 4’를 기준으로 삼았다.


1991년 출시되어 여러 편의 속편을 낳은 ‘문명’은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계에 큰 획을 그은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기원전 4000년부터 중세와 근현대를 거쳐 가까운 미래까지 한 문명의 지도자가 되어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문명’에는 정치체제와 종교, 문화, 도시계획, 외교 등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군사유닛의 운용과 테크트리, 즉 전쟁과 과학이다. 중요한 테크를 빨리 탈수록 다른 문명보다 이른 시기에 더 강력한 군사유닛을 뽑을 수 있기에 과학기술의 경쟁은 곧 군비경쟁이다.


1991년작 시드 마이어의 문명


역사상 최초의 군비경쟁은 금속을 무기 제조에 유용한 소재로 만들고자 하는 경쟁이었다. 청동기술을 연구하면 만들 수 있는 창병(공격력 4)과 도끼병(공격력 5)은 기본 유닛인 전사(공격력 2)의 두 배 이상 되는 공격력으로 보병들의 백병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러한 무기도 말이 끄는 전차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특히 이집트 문명의 고유 유닛인 전투전차(공격력 5, 이동력 2)는 기존 유닛들의 두 배나 되는 기동력을 바탕으로 고대의 전쟁터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집트를 비롯한 전차 부대를 거느린 문명들은 어느 시대의 어느 곳에서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좀 더 우월한 신무기를 개발하게 되어 있다는 역사의 진실을 간과하는 자만에 빠졌다. 그 신무기는 철이라 불리는 금속이었다. 철제기술을 연구한 다른 문명들이 검사(공격력 6)를 이끌고 쳐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전차를 앞세운 문명들은 자신들의 결정적 무기가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차 - 전략자원인 말을 확보하고 바퀴를 연구하면 생산 가능한 최초의 기병유닛


어떻게 전차가 개발되었으며, 어떻게 전차가 고대의 전쟁터를 지배했으며, 그리고 훗날 보다 우월한 과학기술에 의해 그 전차가 패배하게 되었는지 그 전 과정은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전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 그 순환의 과정은 이런 식이다. ‘결정적인 무기’의 개발, 그 무기가 전쟁터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시기, 맞수의 등장, 그리고 다시 더 크고 더 좋은 무기의 개발, 또 그에 맞서는 무기의 개발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철의 발견 이후에도 그러한 순환은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공성유닛인 캐터펄트(턴당 8%씩 도시 방어력을 깎음, 최대 50%까지 스플래시 대미지)의 등장이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두꺼운 성벽(도시 방어력 +50%) 안에 위치한 적을 손쉽게 공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중세에는 장궁병(공격력 6, 도시방어 +25%)과 석궁병(공격력 6, 밀리유닛 상대 +50%)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놓았고,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사(공격력 10, 이동력 2)가 전쟁터의 맹주로 위용을 떨쳤다.


새로운 기술의 발견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유형의 경이로운 무기를 탄생시켰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약의 개발로 공성전뿐만 아니라 야전에서도 강력한 힘을 보여준 공성유닛 대포(공격력 12)와 소총병(공격력 14, 기병유닛 상대 +25%)이 중세 기사를 전쟁터에서 완전히 내쫓았다. 현대에는 기갑유닛인 탱크(공격력 28)와 현대전차(공격력 40)가 최강의 지상병기로 군림했고, 공중유닛인 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헬리콥터가 등장해 전장의 개념을 한 차원 확장시켰다.


문명 테크트리의 일부분 - 이를테면 화약을 연구하면 머스킷총병을, 강선을 연구하면 소총병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위대한’ 정복자의 뒤에는 항상 제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가장 큰 업적도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무세이온이라는 왕실과학연구기관을 건립한 것이었다. 그는 과학을 제도화했으며 국가가 운영하는 연구소나 조병창, 조선소에 과학자들을 끌어들여 전쟁병기를 개발하도록 했다. 덕분에 무세이온은 1800년 후에야 찾아올 르네상스 때까지 세계 과학의 중심지로 남을 수 있었다.


군사기술의 혁신이라는 동기는 고금을 막론하고 과학의 발전에 주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설사 과학자들이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연의 신비를 밝히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재정을 지원하는 국가의 심산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 전체 연구개발 예산의 20%가 국방 연구개발 예산이고, 정부 연구개발 예산에 한정할 경우 그 비율은 50%를 초과한다. 더욱이 모든 과학자가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한 것도 아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열렬한 애국자로서 순수과학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군사기술의 발전에 바쳤고,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는 과학의 실용성을 ‘불명예스럽고 저속한’ 것으로 여겼던 과학자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로마의 침략으로부터 시라쿠사를 지키고자 했던 아르키메데스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의 개발을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미국의 과학자들까지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문명’에서도 위대한 과학자와 기술자를 비롯하여 많은 위인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국을 위해 제 한 몸을 기꺼이 바치는 위대한 기술자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실은 과학의 비법은 아무리 단단히 감추어도 언젠가 외부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명’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한 플레이어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플레이어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핵무기 개발은 통치자의 의지만 있다면 기술적 구현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미국 이후로 여러 나라가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실에서 핵확산을 막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끝없는 군비경쟁과 전쟁과 과학의 쌍방간 야합의 역사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필연적인 것일까?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지금 상황에서 상대 문명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재 상태가 언젠가 모종의 합의를 통해 다 같이 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에서도 군사적 정복과 지배가 게임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 밖에 문화적 승리와 외교적 승리, 그리고 가장 먼저 우주식민지 개척에 성공하면 성취되는 과학적 승리가 있다. 과학적 승리는 한 문명이 군사적 우위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힘만으로 인류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이것이 ‘문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1. Ernest Volkman, Science Goes to War, 2002. (석기용 옮김,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2003) [본문으로]
Posted by 人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