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대개 병사나 지휘관이 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그 임무의 내용이 제국주의 침략이든 인종청소이든 아니면 ‘인도적 개입’ 혹은 ‘정의로운 전쟁’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한편 현대전이 총력전의 양상을 띰에 따라, 전쟁에는 전투원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인 행위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갈수록 많은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쟁은 군인보다 민간인을 더 많이 죽였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사망자의 90%가 군인이었고 민간인 사망자는 10%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거의 반반이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사망자 중 70%가 민간인이었고, 최근의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는 민간이 사망자 비율이 80~85%에 달했다.

-하워드 진, 『역사를 기억하라』


2012년작 ‘스펙 옵스: 더 라인(Spec Ops: The Line)’이 흡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케 하는 스토리라인으로 기존 전쟁게임의 틀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 게임 역시 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은 아주 흥미롭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되어 전쟁의 현실에 내던져진다.


11비트 스튜디오가 2014년 11월 출시한 인디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게임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사라예보를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전쟁통에 한데 모여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일단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은신처의 구멍 난 벽을 보수하고, 부서진 잔해를 모아 각종 도구와 몸 누일 데를 만들고, 음식물을 마련하다 보면 금세 날이 어두워진다. 밤이 되면 한 명이 밖에 나가 저격수를 피해 폐허가 된 도시를 헤집으며 물자를 수집하고, 나머지는 약탈에 대비해 불침번을 서며 동료들과 은신처를 지킨다.


수도와 가스를 비롯한 모든 자원의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든 적병과 싸우기에 앞서 굶주림과 추위라는 인류의 원초적인 적과 싸워야 한다. 식수를 마련하기 위해 빗물을 받고, 겨울에는 눈을 녹인다. 겨울철에 땔감은 식료품, 의약품과 함께 가장 구하기 힘든 자원 중 하나이다. 먹을 것은 언제나 모자라 하루에 한 끼나 제대로 먹으면 다행이고, 며칠을 굶다 덫에 걸린 쥐를 날로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죽음은 예고 없는 불청객이다. 밤에 버려진 건물을 뒤지다가 불한당의 총에 맞을 수도 있고, 수집을 마치고 새벽에 은신처로 돌아오다가 정부군이나 반군 저격수에게 당할 수도 있다. 병이나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이며, 하나둘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지켜본 생존자는 우울과 절망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이 게임에는 세이브/로드가 없다.



“현대전에서, 당신은 별 이유 없이 개처럼 죽게 될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사람들은 보통 ‘재미’를 위해 게임을 한다. 이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 있을까? 액션게임들이 주는 말초적 쾌락이나 멋진 그래픽이 선사하는 심미적 만족은 아닐 것 같다. 최후 생존이라는 목표 달성에 따른 성취감 정도는 있겠다. 하지만 솔직히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즐겁다기보다 우울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것은 어느 하나도 달갑지 않은 몇 가지 상황 중에 어쩔 수 없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의 연속이다.


때로는 생존을 위해 양심을 버려야 한다. 플레이어는 곤경에 처한 외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도 있고, 통조림 몇 병을 얻고자 무고한 이웃을 군인들에게 밀고할 수도 있다. 노부부의 집을 강도질하든, 병원에서 붕대와 약을 훔치든, 총칼로 중무장해 군부대를 습격하든 모든 것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다. 일반적인 법칙은 몸이 편할수록 마음은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내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도 남는 것은 아픈 과거와 공허한 현재뿐이다. 전장에서의 용맹과 활약을 기리는 훈장도, 명예로운 개선 행진도 없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지금까지 내가 해본 가장 우울한 게임이었다. 우리가 <쉰들러 리스트>를 ‘재미있는 영화’라고 표현하지 않듯, 이 게임을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이 게임을 추천한다.


게임 플레이 화면



Posted by 人鬪